Cape Breton Island 에서 드리는
이달의 편지
Cape Breton Island 에서 드리는
이달의 편지
케이프 브레튼 선교지에서 드리는
7월의 선교 편지
하나님의 약속보다 나의 계산이 앞서면...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보다 ‘자기의 계산’이 앞섰던 사람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보다 저의 계산이 앞설 때마다 ‘아, 나는 정말 야곱 같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했던 사람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야곱은 하나님 그분을 사모하기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복’을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만일 야곱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복보다 하나님 그분을 사모했다면, 야곱은 절대로 거짓말을 안 했을 겁니다. 그러나 야곱은 집요한 거짓말과 거짓 행위를 통해서라도 복 받기만을 원했습니다. 그 결과, 야곱은 자신이 기대하던 복은 커녕 모든 것을 잃고 광야에서 혼자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혼자가 된 후에야 야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야곱아,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고, 내가 너를 축복할 것이다”(창 28:13~15). 야곱이 그곳에 기념비를 세우며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해 주시면, 제가 이곳에 하나님의 집을 세우고, 반드시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창 28:20). 후에,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야곱은 이 약속을 스스로 지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약속했던 단을 쌓아라”(창 35:1)라고 명령하신 후에야 야곱은 이 약속을 지킵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속담처럼, 약았던 야곱은 더 약은 라반을 만납니다. 야곱은 오랫동안 라반 밑에서 속임을 당하며 고생스러운 삶을 삽니다. 우여곡절 속에서 힘들어 하던 야곱에게 다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야곱아, 걱정 말고, 너가 간절히 원하던 고향으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창 31:3).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하나님은 여러 번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라고 약속햐셨지만 야곱은 걱정과 근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형 에서가 한 편을 치면 한 편은 도망가야겠다’라는 계산으로 자기 재산과 가축을 반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보고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저를 축복해주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창 32:9~12). 야곱은 다시 ‘안되겠다’라는 마음에 에서를 위해 선물을 준비합니다. 그냥 선물을 보내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꾀를 부려서 에서의 진노를 풀어보려고 애를 씁니다.
마침내, 야곱은 얍복강 나루터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제 곧 에서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야곱은 자기의 모든 재산과 두 아내와 아들들을 먼저 강을 건너 보냅니다. 그리고 정작 자신은 건너가지 않습니다. 왜 아내와 자식들까지 먼저 건너보내고, 정작 자신은 그 강을 건너지 않은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여차하면 혼자라도 도망 갈 계산이 은연중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일 야곱이 하나님의 약속을 정말로 믿었다면, 아니면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결심이라도 있었다면, 그가 사랑하는 아내 자식들과 함께 강을 건너지 않았을까요?
아내와 자식들을 건너보내고 홀로 남아 근심하던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를 만납니다.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여러 차례 축복을 약속 받았지만, 야곱은 다시 축복을 간구하며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을 합니다.
이후로도, 야곱의 삶에는 고생이 끊이지 않습니다. 야곱은 아들 요셉을 잃었다가 다시 극적으로 요셉을 만납니다. 그리고 총리가 된 요셉과 함께 바로 왕 앞에 서게 됩니다. 바로 왕이 야곱에게 물었습니다, “네 나이가 얼마이냐?” 야곱이 대답했습니다, “130입니다.” 그리고는 왕이 묻지도 않은 말을 야곱이 덧붙입니다, “정말 고달픈 세월을 살았습니다”(창 47:9). 감히 왕 앞에서 신세타령하는 듯한 말을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것을 보니, 야곱은 자기 인생이 ‘정말로 고달팠다’라고 느꼈나 봅니다.
돌아보면 힘든 시간을 보냈을 때는...
이번 6월 말에 제 아들 다윗이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곳은 한국과 달리 중학교가 2년 과정, 고등학교가 4년 과정입니다. 올 가을에 다윗이 벌써 고등학생이 됩니다.
2010년 처음 이곳으로 선교를 올 때, 토론토에서 원주민 선교를 하시는 어느 한 분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선교사님들이 보호구역 쪽으로 들어가면, 외롭고 힘들어서 짧으면 1년, 보통 2년, 길면 3년만에 다 나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제가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하나님, 보호구역 쪽으로 들어가서 10년 이상 사역을 하겠습니다.”
그 다음 해인 2011년, 저는 다윗을 낳자마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00일도 안 된 갓난 아기를 혼자 키우는 방법을 몰라 잠시 한국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3살이 되었을 때,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다시 선교지로 돌아왔습니다.
3살된 아들의 손을 잡고 다시 선교지로 돌아올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큰 배낭 두 개를 앞뒤로 매고, 왼손으로는 아들 손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큰 이민 가방을 끌었습니다. 캐나다에 도착한 후, 입국심사를 위하여 줄을 서 있을 때에는 마음이 얼마나 떨리고 외롭던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왼손으로는 3살된 아들의 손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예수님의 손을 붙잡는 상상을 했습니다.
겨우 6개월 관광비자를 받아서 캐나다에 입국했지만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선교하는 문제, 먹고 사는 문제, 아들을 양육하는 문제, 아들을 교육하는 문제... 해결해야 할 큰 문제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엇그제 유치원에 간 것 같은 아들이 벌써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돌아보면 정말 은혜롭고 풍족한 삶이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광야를 걸어도 매우 거친 광야를 걸어온 느낌입니다. 왜 야곱의 입에서 바로 왕이 묻지도 않은 “정말 고달픈 세월을 살았습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는지 저는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삶을 돌아보면, 힘든 시간을 보냈을 때는 언제나 내 꾀가 내 머리에 가득찼을 때였습니다. 비슷하게 어려운 일을 만나도 온전히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에는 늘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느꼈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잠시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 긴 시간이 지난 후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인도가 내게 훨씬 유익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보다 내 계산이 앞서지 않도록...
하나님의 계획보다 내 꾀가 앞서면 고달픈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보다 내 계산이 앞서면 걱정과 염려가 끊이지 않습니다. 반면에,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곳으로 나를 인도하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면 우리는 참된 평안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내가 너를 떠나지 않고, 내가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수 1:5)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내가 너를 도와줄 것이다. 나의 오른손이 너를 붙들 것이다.”(사 41:10) 예수님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할 것이다.”(마 28:20) 이 약속은 우리 모두를 향한 약속입니다. 우리 중 이 약속에서 제외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과 끝까지 ‘자기 계산에 맡기는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이제 이곳에서의 사역을 마무리 하고, 7월 16일에 서부(BC주)로 이사할 예정입니다. 고민되는 일이 많고 생각도 많지만,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맡기려 노력합니다. 눈에 보이는 형편보다 하나님의 약속이 더 힘있고 능력 있음을 믿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선하시고, 가장 능력 있으신 분을 끝까지 신뢰합니다. 그리고 그분께 감사합니다. 서부로 옮기는 과정도, 그리고 옮긴 후의 사역도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고 축복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늘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음성편지 찬양 ] "내 영혼이 은총 입어" (나무엔. www.youtube.com/watch?v=HPLEdz-GTgg&list=RDHPLEdz-GTgg&start_radio=1 )
케이프 브레튼 섬에서
이근권 목사 드림
이근권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과 대학원 졸업, 성육보육원&노인요양원 원목실 담임, 에스카소니 선교, (일산)제자교회를 담임하였고, 현재는 에스카소니 & 폴롯엣 보호구역 원주민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기도 제목 나눕니다
1. 원주민에게 복음 전파
보호구역 원주민들과 복음을 나누고, 나눈 복음을 ‘전도도서(엽서, 카드)’로 만듭니다.
원주민들과 만든 전도도서를 “당신들이 만든 책입니다”라고 말하며 다시 ‘복음을 전하는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전도도서 만들기는 서부로 이주한 후에도 계속됩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정말 신이 있다면,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정말 신이 있다면, 왜 그분이 기독교의 하나님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도 아닌데, 왜 내가 이스라엘의 신을 섬겨야 합니까?)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예수님이 정말 실존하셨고, 부활도 하셨나요?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난 아무 잘못 안 했는데, 기독교인들은 내가 왜 죄인이라고 합니까?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이 왜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저는 구약의 하나님이 너무 싫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왜 그렇게 잔인하십니까?
예수님을 선택할 기회조차 없이 죽은 사람들은 그들의 양심에 따라 착하게 산 것으로 천국에 간다면, 뭐하러 복음을 전합니까?
로마 가톨릭 신앙이 왜 잘못됐나요?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데, 왜 교회가 필요합니까?
2.
믿음으로 구원 받으니 행위는 구원과 무관하나요?
거듭난 사람들의 특징이 있나요?
거듭난 사람들이 얻는 행복과 놀라운 약속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 왜 고난을 당하나요?
고난을 이기는 방법
고난에서 얻는 유익
어떻게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인하나요?
왜 말씀 생활을 해야 하나요?
왜 기도를 해야 하나요?
찬양하는 삶이 무엇인가요? (찬송가를 많이 부르라는 말인가요?)
신앙생활은 고통스러운 금욕주의가 아니라 설레임과 행복의 시작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나에게도 사명을 주셨나요?
2. 사역지 이동 및 사역
(1) 7월 16일, BC로 이사하는 문제를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 지금 거주하고 있는 NS 주에서 BC 주까지는 약 한국에서 우즈베키스탄까지의 거리인데, 사고 없이 그리고 건강히 잘 운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 BC주에 도착하면 우선 랭리 또는 써리 지역에 월세를 얻을 계획인데, 좋은 거처를 얻게 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2) 서부로 이사한 후에도 이어질 원주민 사역을 위하여 기도해주세요.
• Love Corps 선교회 원주민 선교
• 교회가 서도록
다음과 같은 교회가 세워지도록 함께 기도해주세요.
− 예배, 양육 및 영성훈련
− 원주민 선교 활동
− 장,단기 선교사 훈련
(2025년 6월까지 건축 헌금이 총 C$ 36,636.17 모금되었습니다. 교회가 서도록 선교비로 함께 동참해 주시고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3. 사역자를 위하여
성령 충만한 사역자
성령 충만하여 늘 하나님의 뜻을 민감하게 발견하고, 내 고집을 꺾고, 그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길 원합니다. 성령 충만하여 가는 곳마다 그리고 하는 일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사랑 충만한 사역자
제가 20살부터 교회 사역을 시작했으니, 평신도로 산 시절보다 사역자로 산 시절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대형 교회, 다양한 사역, 다양한 선배 목사님들과 사역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그리운 선배 목사님은 말을 잘하거나, 능력이 있거나, 정치적이거나, 인기가 많았던 목사님이 아닙니다. 단지 사랑이 많았던 목사님이 가장 생각나고 보고 싶습니다. 제가 섬기는 선교지의 사람들도 동일한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를 하면 할수록 ‘사랑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 잘하고 능력 있는 사역자가 되기보다, 사랑이 많은 목회자가 되길 원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제가 늘 사랑 충만하도록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지혜 충만한 사역자
허락하신 영역 안에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 할지라도, 이왕이면 하나님을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곳에서,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일을 하길 원합니다. 모든 사역을 지혜롭게 잘 이루어 나아가고,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도 지혜롭게 잘 이루어 나아가길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길 원합니다. 저의 무지와 부족함이 장애가 되지 않길 원합니다. 저에게 지혜를 주시길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