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선교
캐나다 선교
이번 달에도 매주 거리에서 예배를 드리고 거리의 마약 중독자들, 노숙자들, 그리고 빈민들을 섬기며 한 달을 보냈습니다.
이번 달에는 조금 특별한 사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맥그래스라는 69세 남자인데, 범죄와 마약 속에서 살다가, 지금은 가는 곳마다 예수님을 전하게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저에게 자신의 긴 간증을 들려주었습니다. 그의 간증을 듣고 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거리에 쓰러져 있는 마약 중독자들도 맥그래스와 같이 정말로 예수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그래서 그들의 삶이 완전히 변화되게 하옵소서!”
맥그래스는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일곱 형제 중 한 명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은 한마디로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아버지는 밤마다 술에 취해 돌아와 어린 맥그래스를 방에 앉혀놓고 욕을 퍼부었습니다. 졸기라도 하면 뺨을 때리고 발로 걷어찼습니다. 냉장고 문에 날아가 부딪히게 할 만큼 어린 맥그래스를 강하게 때렸습니다. 맥그래스의 형제들은 나무판으로 턱을 맞아 턱이 부러진 적도 있었습니다.
맥그래스와 어린 여동생은 밤마다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벌어지는 싸움을 울며 바라봤습니다. 가구가 부서지고 병이 날아다녔으며, 아버지가 맞아 기절해 쓰러지면 개가 와서 피를 핥았습니다.
그의 가정은 극도로 가난했습니다. 집에 먹을 것이 없고 오직 버터 한 덩이만 남아 있어, 맥그래스는 여동생과 숟가락으로 그 버터 덩어리를 나눠 먹는 날도 많았습니다. 양말 대신 빵 봉지를 신은 날도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의 부모님들은 절도죄로 감옥에 가게 되었고, 맥그래스는 위탁 가정에 맡겨졌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이라, 맥그래스는 반드시 찾으러 오겠다던 부모님의 약속만 믿고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끝내 부모님들은 맥그래스를 찾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맥그래스는 혼자가 되었습니다.
맥그래스의 마음속에는 분노와 증오가 점점 커져갔습니다. 그는 열두 살이 되었을 때 이미 마약을 하고, 38구경 권총을 들고 다니며 강도질을 했습니다. 그는 ‘재활학교’로 보내졌지만, 그곳을 탈출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열여섯 살에는 재활학교에서 배운 기술로 잠시 목수 일도 했지만, 그 일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반복되는 마약과 강도질로 열여섯 살 반에 결국 교도소에 수감됐습니다. 그리고 열일곱 살에는 캐나다에서 가장 가혹하다는 킹스턴 연방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교도소 안에서도 맥그래스의 삶은 충돌과 폭력의 연속이었고, 그 이유로 그는 독방 생활도 잦았습니다. 교도소 안에서도 그는 악명이 높아 ‘루시퍼’라고 불릴 정도였습니다.
출소 후에도 그 삶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는 ‘사탄의 선택’(Satan's Choice)이라고 불리는 오토바이 갱단에서 활동하였고, 마약과 총과 강도질로 삶을 살았습니다.
1977년에는 킹스턴의 ‘Holiday Inn’(캐나다의 호텔)을 총으로 털다 경찰과 총격전까지 벌였습니다. 경찰에 체포된 그는 경찰차 뒷좌석에서 수갑을 풀고, 경찰관을 쓰러뜨린 뒤 도주하였습니다. 이 일로 온 마을이 발칵 뒤집혔고, 경찰견까지 동원된 대규모의 수색 작전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캐나다 10대 수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수배 중이던 맥그래스는 결국 1980년에 스스로 경찰에 자수했습니다.
물론 맥그래스도 어린 시절부터 예수님을 알았고, 입술로는 “나는 크리스천이야”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예수님을 영접한 때와 장소는 1987년 밀헤이븐 교도소였습니다. 그는 정말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전에 얻지 못했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을 얻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맥그래스는 절대 안 변해”라고 말했지만, 맥그래스의 삶은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밤낮으로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교도소 안에서 다른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1989년에 출소한 이후, 37년이 지난 지금까지 교도소, 노숙자, 마약 중독자, 알코올 중독자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맥그래스는 저에게 자신의 간증을 들려준 후,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짜 기쁨은 예수님을 아는 데 있습니다.”
저는 마약 중독자와 노숙자들을 돌보는 사역을 하며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은 절대 안 변해”라는 말입니다. 저 또한 ‘과연 저들이 변화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이렇게 생각하며 지금까지 사역을 했습니다. ‘저들은 안 변해. 그러나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고, 누군가는 해야 할 사역이기 때문이야.’ 그러나 맥그래스를 만난 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정말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되지 않을 사람이 없구나.’
거리에 쓰러져 있는 마약 중독자들은 맥그래스와 같이 우울한 성장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절대로 변화되지 않을 것 같았던 맥그래스가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된 것처럼, 거리에 쓰러져 있는 마약 중독자들도 정말로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된 삶을 살게 되길 기도합니다.
거리의 마약중독자, 노숙자들, 그리고 빈민들이 정말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저에게 성령과 사랑과 지혜를 충만하게 부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음성편지 찬양 ] Gaither, Since Jesus Came Into My Heart,
https://www.youtube.com/watch?v=eoCC1NjIHPE&list=RDeoCC1NjIHPE&start_radio=1
이근권 목사 드림
이근권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과 대학원 졸업, 성육보육원&노인요양원 원목실 담임, (일산)제자교회를 담임하였습니다. 케이프 브레튼 섬(NS)에서 12년 동안 믹맥 원주민들을 섬겼고, 지금은 캐나다 서부에서 거리의 마약중독자들과 빈민들 그리고 원주민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함께 기도해주세요
1. 교회가 세워지도록
원주민 & 노숙자 선교 사역을 위한 교회가 세워지도록 기도해주세요.
세이비어처치를 아시나요? 미국 '세이비어 처치'(Church of the Saviour)는 고든 코스비 목사 부부 와 5명의 성도에 의해 설립된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Potter's House라는 이름과 함께 '커피하우스&서점' 형식으로 시작된 교회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교회는 현재 예배, 영성훈련센터, 제자양육, 사회선교 (Festival Center), 노숙자선교(Christ House), 아동선교(For Love of Children), 의료선교(콜롬비아 로드 진료소) 등으로 작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크게 드러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세이비어처치와 같은 교회가 이곳(Surrey 또는 Langley)에도 세워지도록 함께 기도해주세요. 정확히 동일한 사역은 아니지만, 세이비어 처치 와 같은 교회가 이곳 실정에 맞게 세워져서 이곳의 수많은 '노숙자들', '마약 중독자들', '원주민들', 그리고 '그 외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사랑의 빛, 영광의 빛, 복음의 빛을 드러내도록 기도해주세요.
3년 내에 이러한 교회가 세워지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 노숙인 & 빈민 선교
‘거리 예배’에는 주로 가난한 중국인, 백인, 아프리카계 흑인, 그리고 가끔 중동의 무슬림들도 참석합니다. 물론 음식을 받기 위해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이지만, 예배를 통하여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 받게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예배 드리기 전과 후, 거리의 노숙자들과 마약 중독자들을 돌아볼 때에는 주로 백인, 원주민, 그리고 인도 계통의 마약중독자들을 많이 만납니다.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로 이들에게도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해주세요.
3. 문서 선교
전도도서를 제작하여 ‘원주민 보호구역’에 무료로 보급할 예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도도서 제작 사역을 축복해주시길 기도해주세요.
Canada Mission News가 캐나다내 모든 사역자들을 위한 '기도편지'가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문서선교(Canada Mission News)가 원주민 선교사들과 캐나다 내의 목회자들(특히 작은 교회 목회자들)에게 힘이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CMN 또한 참된 복음의 빛을 발하도록 기도해주세요.
캐나다 선교 뉴스 매거진 :
4. 원주민 선교
현재, 제가 살고 있는 곳 주변에만 5개의 원주민 보호구역들(쾐틀랜, 캣지, 코퀴틀람, 세미아무, 싸와센)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전임 사역자는 물론 단기 프로젝트 사역자도 없습니다. 이유는 원주민 마을이 문을 열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원주민 보호구역들의 문이 열리길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