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선교
캐나다 선교
어느 가난한 사람이 거리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는 예배 내내 앞으로 허리를 숙인 채 엎드려 있었습니다. 거리에서 드리는 예배이지만 예배 시간이 짧지 않은데, 예배 시간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자세로 엎드려 있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식사 시간이 되자 드디어 허리를 펴고 앉았습니다. 그의 얼굴은 힘이 하나도 없고, 슬픔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저는 따뜻한 음식을 들고 그의 옆에 앉았습니다. 그에게 음식을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의 이름은 가브리엘입니다. 이거 드릴까요?”
그도 음식을 받으며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습니다. “저는 크랙입니다.”
저는 계속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크랙은 대화할 힘도 없고, 의지도 없어 보였습니다. 대화에 소극적이던 그가 뜬금없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가족이 어떻게 되세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싱글 아빠예요. 저는 아들과 둘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적극적인 표정을 지으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저도 2년 전에 제 아내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혼자 살고 있어요.”
저는 그의 마음을 공감한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극복해야할 고난이 있죠. 저는 아들이 낳고 100일도 되기 전부터 혼자서 아들을 키웠어요. 그렇게 15년째 살고 있어요.”
지금까지 힘도 없고, 말도 없고, 대화할 의욕조차 없던 그가 ‘자신의 스토리’와 ‘자신이 당한 고난’과 ‘지금의 심정’을 한참 동안 저에게 고백했습니다.
저는 크랙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에, 그을 축복하며 기도해주었습니다.
크랙은 환히 웃으며 돌아갔습니다.
거리 예배에서 그를 계속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고난을 반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난은 언제나 반갑지 않습니다. 그런데 반갑지 않은 고난이 가져다주는 유익도 있습니다. 고난이 가져다주는 여러 유익 중에 하나는, 바로 ‘드디어 위로자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배고픔을 모르는 부자가 배고픈 사람을 위로할 수 없습니다. 외로움을 모르는 인기인이 외로운 사람을 위로할 수 없습니다. 큰 고난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큰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을 위로할 수 없습니다. 큰 고난은 큰 고난을 이겨낸 사람만 위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가난한 자리로 오셔서, 가장 큰 고난을 당하신 것 또한 모든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입니다. (히 2:18)
혹시, 이제 막 큰 고난의 터널을 지나오신 분이 있다면, 그분들에게 이렇게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이제 큰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을 위로하실 수 있는 위로자가 되셨습니다.”
15년 전, 제가 큰 고난을 당했을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찾아와 위로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의 위로도 저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대꾸할 힘조차 없어서 그저 듣고만 있었지만, 그들의 위로는 저에게 그저 ‘공기 중에 울리는 음파’ 로만 여겨졌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내가 당한 고난을 전혀 이해하지도 그리고 공감하지도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어느 선배 목사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선배는 충청도 깊은 시골에서 목회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선배가 깊은 시골에서 목회를 하는 동안 사모님은 인터넷 게임과 채팅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어느 남자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사모님이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교회와 가정을 버리고 새 남자 친구를 따라 떠났습니다. 홀로 어린 3명의 자녀들을 키우며 목회를 하는 그 선배가 저에게 와서 한 마디 말을 건넸습니다. “네가 지금 얼마나 힘든지 나는 알아. 근데 이겨낼 수 있어.”
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누구의 위로도 저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는데, 이 선배의 한 마디가 저의 마음을 위로하였습니다. 이유는 ‘이 선배는 정말 나의 아픔을 알고 있구나. 이 선배가 고난을 이겨낸 것처럼 나도 이겨낼 수 있겠구나’ 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 고난 없이, 평안하게 무병장수하다가, 가족들에 둘러싸여 죽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이것이 복일까요?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열고 우리에게 천국의 모습을 단 1분만 보여주신다면, 여전히 ‘고난 없이 무병장수하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될까요? 이것이 복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모두 고난 없이 평안하게만 살다 죽기보다는, 주를 위해 당하는 고난 또는 주의 뜻으로 인도하는 고난을 귀하게 여기며 감사해 할 겁니다.
비록 부끄러운 고난이더라도 내가 당한 고난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면,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될 수만 있다면, 제가 당한 고난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면 좋겠습니다.
어떤 이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떠나지만, 어떤 이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어떤 이는 고난 속에서 불평할 이유만 발견하지만, 어떤 이는 고난속에서 숨겨진 축복을 발견합니다. 많은 이들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거리의 노숙자들과 마약중독자들도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길 기도합니다. 여러분들도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기도로 동참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음성편지 찬양 ] 소리엘&김수진, "주를 만났네" www.youtube.com/watch?v=XweFb270bSc
이근권 목사 드림
이근권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과 대학원 졸업, 성육보육원&노인요양원 원목실 담임, (일산)제자교회를 담임하였습니다. 케이프 브레튼 섬(NS)에서 12년 동안 믹맥 원주민들을 섬겼고, 지금은 캐나다 서부에서 거리의 마약중독자들과 빈민들 그리고 원주민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함께 기도해주세요
1. 한국 방문
3월 5일 ~ 24일까지 이비인후과와 안과 진료를 위해 한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한국 방문이 되길 기도해주세요.
2. 노숙인 & 빈민 선교
‘거리 예배’에는 주로 가난한 중국인, 백인, 아프리카계 흑인, 그리고 가끔 중동의 무슬림들도 참석합니다. 물론 음식을 받기 위해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이지만, 예배를 통하여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 받게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예배 드리기 전과 후, 거리의 노숙자들과 마약 중독자들을 돌아볼 때에는 주로 백인, 원주민, 그리고 인도 계통의 마약중독자들을 많이 만납니다.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로 이들에게도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해주세요.
원주민 & 노숙자 선교 사역을 위한 교회가 세워지도록 기도해주세요.
3. 문서 선교
전도도서를 제작하여 ‘원주민 보호구역’에 무료로 보급할 예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도도서 제작 사역을 축복해주시길 기도해주세요.
Canada Mission News가 캐나다내 모든 사역자들을 위한 '기도편지'가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문서선교(Canada Mission News)가 원주민 선교사들과 캐나다 내의 목회자들(특히 작은 교회 목회자들)에게 힘이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CMN 또한 참된 복음의 빛을 발하도록 기도해주세요.
캐나다 선교 뉴스 매거진 :
4. 원주민 선교
현재, 제가 살고 있는 곳 주변에만 5개의 원주민 보호구역들(쾐틀랜, 캣지, 코퀴틀람, 세미아무, 싸와센)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전임 사역자는 물론 단기 프로젝트 사역자도 없습니다. 이유는 원주민 마을이 문을 열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원주민 보호구역들의 문이 열리길 기도해주세요.